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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茶山 丁若鏞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죽란시사 竹欄詩社’는 18세기의 대표적인 시사이다.
『여유당전서 與猶堂全書』에 실려있는 「죽란시사첩서 竹欄詩社帖序」에서 죽란시사는 15명의 남인 관료들로 구성되어있으며 동인들과 앞으로 시사를 이끌어나갈 전개 방향을 작성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죽란시사첩은 그 실물이 발견되지 않아 그 안에는 15명의 명단과 시사의 규약이 기록되어있음을 예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익찬공서치계첩』은 정약용을 포함한 남인 관료 15명의 목록과 이들이 모임 규약이 기록된 필사본 첩이다. 앞의 ‘서치 序齒’ 부분에는 죽란시사 구성원들의 명단을 나이순으로 배열하고 각 계원의 이름, 자, 본관, 생년월일을 상세히 기록했고 그 뒤에는 ‘사약 社約’을 적어놓았다. 사약은 8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성범위, 덕의 德義를 서로 권하고, 생일을 축하하고, 춘추가절 春秋佳節에 유람하고, 자녀를 얻고 벼슬이 높아지면 모임을 갖고, 세상 사람들의 과오를 얘기하면 벌주 한 잔을 마시고, 사사롭게 작은 술자리를 만들거나 모임에 불참하면
벌주가 석 잔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익찬공서치계첩』에 등장하는 15명이 명단이 「죽란시사첩서」에 기록된 인물들과 완벽히 일치하며 ‘사약’이라는 명칭 자체가 이것이 ‘죽란시사’의 약속임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또, 사약의 내용이 정약용이 「죽란시사첩서」에 서술한 시사의 방향, 규율등과 부합하여 『익찬공서치계첩』이 바로 ‘죽란시사첩’임을 증명한다.
이 첩을 소장했던 사람은 ‘익찬공 翊贊公’으로 볼 수 있는데 ‘익찬공’은 시사 동인 중 한 사람인 한백원 韓百源이다. ‘익찬 翊贊’은 세자익위사 世子翊衛司의 정6품 관직으로 일성록과 승정원일기에서 한백원이 세자익위사 익찬에 임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첩이 죽란시사첩임을 증명하는 또 다른 근거가 된다. 표지에 남아있는 ‘익찬공서치계첩’ 글씨는 아마 한백원이 사망한 후에 그 후손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익찬공서치계첩은 어떤 문헌에도 기록이 실려있지 않은 죽란시사의 결성과 구성, 활동의 실체를 분명하게 확인해주며 18세기 후반 남인계통의 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