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옥션 제13회 미술품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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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 081

금사 錦史 이화선 李花仙 화 19세기 말-20세기 초
수암 守巖 김유탁 金有鐸 제 -
묵매 墨梅
종이에 수묵
130.8x32.6cm
족자/추정 KRW 700,000-2,000,000
낙찰 KRW 700,000

<평양화단과 기생화가>

20세기 초 관기제도의 폐지와 권번券番 체제의 정착을 통해 서울 화단에 평양 출신 서화가들과 기생 화가들이 등장했다. 이는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사회 제도의 변화와 서화 상업화 및 대중화 현상의 산물로, 이 시기에 등장하여 주목을 받은 기생화가는 여성 서화가의 첫 등장이라는 데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평양에서는 1915년 윤영기가 설립한 기성서화회와 김규진의 서화연구회를 통해 근대 여성 서화교육이 시작되었으며 여기에는 기생 서화교육에 적극적이었던 수암 김유탁도 참가했다. 윤영기의 기성서화회에 출입하는 문하생 중에는 죽서 함인숙, 춘사 임기화, 낭헌, 난서,일사, 능운, 향사, 금주, 금사 등의 기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이들은 윤영기, 김유탁, 양영진으로부터 전문 서화교육을 받으면서 전문 서화가들과 교류하면서 함께 휘호회를 열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함인숙은 <매일신보>에 화가로서 활동을 알리는 기사가 실렸고, 양기훈의 아들인 양영진과 1916년 5월 명월관에서 합동작품전람회를 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서화교육을 받고 배출된 뛰어난 기생들이 화단에 뿌리를 내리지는 못하였으나 전통시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전통화단의 ‘연결자’로서의 역할을 한 기생의 서화 작품활동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여전히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