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옥션 제14회 미술품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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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 049

위창 오세창 葦滄 吳世昌 외 1864-1953
북원이집첩 北苑二集帖
종이에 먹
21x14.8cm (6면)
첩/추정 KRW 2,000,000-5,000,000
낙찰 KRW 2,000,000

『북원이집첩北苑二集帖』은 오세창吳世昌, 고희동高羲東, 이도영李道榮, 박한영朴漢永,민형식閔衡植, 안종원安鍾元 6인이 시회를 갖고 이를 기념하여 남긴 시회첩이다.

이들은 동인의 집을 돌아가며 시회를 가졌으며, 시회가 열릴 때마다 이를 기념하여 시회첩과 시회도권 등의 시서화 작품 등을 함께 남겼다. 이러한 시회 활동은 육교시사의 전통과 방고적인 시회문화를 따랐으며,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서도 지조를 잃지 않는 은일지사의 풍류를 추구하였다.

박한영은 「한동아집서」에 음력 10월에 첫 모임으로 북원초집이 열렸으며 뒤이어 원남이집苑南二集·동원삼집東園三集·서원사집西園四集·한동오집漢衕五集이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한동아집과 관련하여 오세창의 시회활동을 조명하는 중요한 자료인 '경고실음고'에는 1924년 10월 30부터 1925년 3월 23일까지 총 25회의 모임 일자, 시회명, 참석자 명단, 모임 장소 등 시회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여기에는 10월 30일의 원북소집을 비롯하여 남원속집南苑續集·동원세모東園歲暮·서원춘초西園春初·한동원소집漢衕元宵集 등 이름을 조금 달리 기록하였으나 시기와 장소, 참석자 등이 서로 일치한다. 오세창은 "1924년 10월 30일 춘곡 고희동이 난타 이기·석전 박한영·성당 김돈희·관재 이도영·육당 최남선과 나를 초대하여 술을 마시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고 이름하여 원북소집이라 하였다. 甲子十月三十日高春谷(羲東)招李蘭坨(琦)石顚上人(鼎鎬)金惺堂(敦熙)李貫齋(道榮)崔六堂(南善)及余治樽拈韻惑畵惑書名曰苑北小集…" 고 기록하였다.

북원이집北苑二集은 1924년 10월 30일 첫 모임인 '원북소집'과 같은 날로 보여지나, 원북소집의 참석자 명단과 본 출품작의 참석자 명단에는 일부 차이가 있다. 또 '경고실음고'의 25회의 시회에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민형식이 유일하게 참가했던 시회로 보여진다. 본 출품작은 기록에 남겨지지 않은 시회의 기록으로서 '북원이집'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모임의 성격을 연구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920년대에 결성된 동인들의 시회활동은 대부분의 인물이 모두 신문물의 도입을 선도한 근대적 지식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복고적인 문예취향을 가지고 고전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전통의 부흥을 모색하는 등 전통과 민족문화에 대한 인식을 서로 공유하고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김예진, 『한동아집첩(漢衕雅集帖)』과 오세창의 시회활동(詩會活動) 연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동양학 제48집,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