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옥션 제14회 미술품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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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 078

석파 石坡 이하응 李昰應 1820-1898
금니석란 金泥石蘭
비단에 금니/ 족자
112.5x35.2cmx2, 112x32.5cm
추정 KRW 20,000,000-45,000,000
낙찰 KRW 20,000,000

이하응의 묵란화는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의 서화 필묵법에 기초하여 발전하였는데, 이후에는 '석파란 石坡蘭'이라 불리는 독창적인 경지를 개척했을 정도로 개성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화풍의 변화와 정치적 부침에 기반하여 몇 단계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기는 30대부터 40대 초반까지로,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로부터 서화를 배우며 예술적 기반을 굳건 히 하던 시기였다. 제2기는 대원군이 된 이후 명성왕후와의 갈등으로 1차 집권에서 실각한 후 직곡산방과 운현궁에서 은거하며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제작하던 시기이다. 제3기와 제4기는 임오군란 후 천진 보정 부로 연행되어 3년간 유폐생활을 했던 시기와 귀국한 이후의 말년 시기로 나뉜다. 대원군 집권 이전에는 추사의 필법을 계승하며 자신의 개성을 만들어가던 시기였다면, 직곡산방 시절에 는 1차 집권에서 실각한 후 양주 직곡산방에서 2년동안 은거하며 울분을 토해내듯 많은 작품을 제작한 다. 이 시기에 군란화群蘭畵, 석란화石蘭畵, 그리고 총란화叢蘭畵 세 가지 유형의 묵란화를 제작하게 되는 데, 이는 예술가로서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를 이룬 시기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유형의 묵란화 구도법은 운현궁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나 석란화가 주를 이루게 되며, 말년에는 석란 화를 채색화彩色畵로까지 발전시키며 '석파란'의 경지를 이루게 된다. 본 출품작은 검은 비단에 금색 안료인 금니金泥를 사용하여 그린 난초도 세 폭으로 우측의 두 폭은 가파른 언덕 을 따라 무리지어 핀 대련 형식의 총란화로 난과 함께 가시가 표현되어 있으며, 나머지 한 폭은 절벽의 바위에 무리지어 피어난 난초를 그린 석란화이다. 직곡直谷 시절에 제작된 총란화는 비록 전하는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이하응이 55세(1874)에 제작한 '군 란도10폭병풍'의 제1폭의 총란도와 비교해 보면 난잎을 처리한 방식이나 자유로운 필치로 속도감 있게 풀 어낸 운필의 기량 등이 출품작과 유사하다. 마지막 한 폭의 석란도에서는 2019년 국립고궁박물관이 '우리 손에서 되살아난 옛그림' 전시에서 공개했 던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소장의 <난초도>와의 연결성도 엿볼 수 있다. 이 폭에는 '於直谷山房 石坡 직곡 산방에서 석파' 라는 서명이 남아있어 직곡산방 시절의 작품임을 입증해주며 금니로 표현되어 유연하지 못 하고 거칠게 느껴지는 오묘한 질감이 기존에 먹의 농담으로 표현되는 묵란화와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본래 병풍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직곡산방 시절 그의 작품세계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 전하는 그의 작품 중 금니로 그려진 작품이 거의 없어 더욱 그 희소성이 높 다. 정치에서 물러나 양주에서 은거하면서 난을 치며 마음을 가다듬었을 이하응의 처지와 검은 비단에 펼쳐진 화려한 금니의 필치가 대비되어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 김정숙, 『대원군천진왕환일기』와 보정부 시절 이하응의 묵란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제7집, 2002, pp.91-123 김정숙,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예술세계』, 일지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