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옥션 제15회 미술품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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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 033

만해 卍海 한용운 韓龍雲 1879-1944
만해필첩 卍海筆帖 : 한시 漢詩
종이에 먹
18.2x10.2cmx13
첩/추정 KRW 40,000,000-80,000,000

만해 한용운은 독립운동가이자 일제강점기 한국 불교계의 분열을 막고자 힘쓴 승려였으며 저항적 민족시인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 설악산 오세암 五歲庵에 들어갔다. 그 뒤 1905년 인제의 백담사 百潭寺에 가서 연곡 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 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1908년에는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 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 圓宗宗務院을 설립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명을 시찰하기도 했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 학교를 방문하여 이를 격려하고 만주, 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하여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 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 佛敎大典』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 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였다.
1916년 서울 계동에서 월간지 『유심 唯心』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방랑하다가 후,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다.
1935년 첫 장편소설 『흑풍 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 『조선 불교유신론 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 十玄談註解』 등이 있다.
불교관계 항일단체에서 활약하다가 1944년 서울 성북동 심우장 尋牛莊에서 중풍으로 세상을 떠났다.
본 출품작은 만해의 한시 네 수를 적은 초고로 보여지며, 모두 필사본인 『잡저 雜著』에 수록되어 있다. 첩의 표지에는 '만해필 萬海筆' 이라는 표제와 이 첩을 소장했던 인물로 추정되는 '철호 鐵湖'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마지막 수는 끝부분의 여섯 글자가 결락되어 완전하지 않다.
한용운은 수필, 논설, 논문, 시, 시조, 한시,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남겼는데 그 중 그가 남긴 한시는 약 176수가 전한다. 그는 한시의 전통적 소재들로 한시를 지었고, 독립운동가로서의 혁명적이고 저항적 모습보다는 그리움, 외로움, 그리고 고향에 대한 향수 등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전통적인 지식인의 모습이 가장 두드러진 정조 情操로 나타난다.
만해의 한시는 그의 만해가 남긴 다양한 장르의 글 중에서 가장 오랜 시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사상적 틀과 지향점에 의해 추상화되거나 가공된 정도가 가장 덜한 모습을 하고 있어 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그의 한시는 불교 승려나, 독립운동가로서의 한용운이 아닌, 인간 한용운의 모습을 비교적 투명하게 볼 수 있어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孤遊」
외로이 떠돌다.

(1수)
一生多歷落 此意千秋同
丹心夜月冷 蒼髮曉雲空
人立江山外 春來天地中
雁橫北斗沒 霜雪關河通
일생에 기구한 일 많이 겪으니
이 뜻은 천추가 다 같으리.
단심은 달밤에 차고,
흰머리 새벽구름 처럼 덧없어.
나는 강산 밖에 있는데
봄은 온 세상에 왔구나.
기러기 비껴 날고 북두는 기울어
서리 눈 국경의 강을 흐른다.

(2수)
半生遇歷落 窮北寂寥遊
冷齋說風雨 晝回鬢髮秋
반 평생 어지러운 운명을 만나
궁벽한 북단에 외로이 떠도네.
차가운 방 안에서 풍우를 걱정하니
이 밤 새면 머리에 가을 짙으리.

「內院庵有牧丹樹古枝受雪如花因唫」
내원암에 늙은 모란이 내린 눈에
꽃이 핀 것을 보고 읊다.

「與映湖乳雲兩伯夜唫」
영호, 유운화상과 밤에 읊다.
雪艶無月雜山光 枯樹寒花收夜香
分明枝上冷精魄 不入人愁萬里長
눈 고와 달 없어도 산 빛과 어우러져
고목의 설화는 밤의 향기 거둔다.
가지 위 차가운 혼령들은
내 근심에 들지 않고 만리에 뻗누나.
落拓吾人皆古情 山房夜闌小遊淸
紅燭無言灰已冷 詩愁如夢隔鍾聲
모이니 불우한 옛 벗들인데
조촐히 노니는 산중 밤도 깊었다.
붉은 촛불 말없이 타고 재는 이내 식어
시시름 꿈같이 종소리 멀어지누나.

「東京旅館聽蟬佳木淸於水」
동경 여관에서 매미소리 듣고
佳木淸於水 蟬聲似楚歌
莫論此外(事 偏入客愁多)
나무 빛은 푸르러 물보다 맑고
여기 저기 매미 소리 초가楚歌 같아라.
이 밖의 다른 일은 말하지 말게.
나그네의 시름만 더할 뿐이니.

작품수록처 | 고승유묵 (예술의전당, 국립청주박물관, 통도사성보박물관, 2004) pp.155-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