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옥션 제17회 미술품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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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 036

한암스님 漢巖 1876-1951
연하장 年賀狀 : 경봉 鏡峰 스님에게
종이에 먹
9x14cm
엽서/추정 KRW 5,000,000-10,000,000
낙찰 KRW 5,000,000

한암스님이 1937년 1월 양산 통도사 주지로 있던 경봉스님(1892-1952)에게 보낸 연하年賀 엽서이다.
'공축신년恭祝新年' 이라는 신년 인사와 함께 뒷면에는 '경남 양산군 통도사 주지 김경봉 대화상 慶南 梁山郡 通度寺 住持 金鏡峰 大和尙' 에게 '오대산중 방한암 五臺山中 方漢岩' 이라는 수신인과 발신인의 주소가 적혀있다.

한암스님은 경허鏡虛, 만공滿空, 수월水月 등과 함께 근세의 선풍을 진작시킨 당대의 대선사였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27년 동안 두문불출, 입적할 때까지 수도 정진하였으며 수련소를 개설하여 후학 양성에 진력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사찰이 공산군의 기지가 될 것을 염려하여 상원사를 소각하려 했으나 한암스님이 법당을 지키려는 불심에 감동하여 문짝만 떼내고 불태우고 떠났고, 그로써 상원사는 천년고찰의 옛 모습을 그대로 지킬 수 있었다.
경봉스님은 1907년 출가하여 양산 통도사 성해의 제자가 되었다. 1908년 3월 통도사에서 설립한 명신학교明新學校에 입학하여 그 해 9월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청호淸湖를 계사戒師로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
1930년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원장을 역임하고 1935년 통도사 주지가 되어 전국의 선승들을 지도하였다. 한시와 시조·필묵에 조예가 깊었으며 18세 때부터 85세까지 67년 동안 매일의 중요한 일을 기록한 일지를 남겼는데, 이 일지에는 당시의 사회상과 한국불교 최근세사가 담겨 있다.
한국전쟁 당시 경봉스님이 통도사에 한암스님의 거처를 마련해주겠다고 한 적이 있었고, 한암스님은 경봉스님의 요청으로 성해스님의 영찬影讚을 짓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1928년 한암과 경봉은 서간 문답이 시작된 후 총 24편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밀하게 교류했다. 한암스님이 입적하자 경봉스님은 "눈빛을 거두는 곳에 오대산이 서늘해, 꽃과 새들도 슬피 울고 달에까지 향연香煙이 어리는 듯. 격식 밖의 현담玄談을 누가 아는가? 만산萬山엔 변함없이 물이 흐르네”라고 추도했다.

한암스님과 경봉스님은 유독 서간으로 선열禪悅을 나누는 교유가 깊었다. 이 엽서는 간결한 새해 인사를 전하고 있을 뿐이지만 한암스님은 오대산에, 경봉스님은 영축산에 거처하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의 안부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