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4회 미술품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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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 070

낭간 琅玕 박창규 朴昌珪 1783-?
화조 花鳥 : 낙화 烙畵
종이에 인두, 먹
57.8x32.6cmx6
가배접/추정 KRW 3,000,000-8,000,000
낙찰 KRW 5,600,000

낙화烙畵는 종이, 비단, 가죽, 나무 등의 표면을 인두로 지져서 그림이나 글씨, 문양을 나타내는 전통회화분야 중 하나이다. 정확한 발생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중기부터 조선에서 성행했던 것으로 보여지며 1822년 동지상사 김노경을 따라 연경에 갔다가 낙화를 배워온 박창규가 1837년 조선에서 처음으로 화화법火畵法을 창시했다고 전해진다.

박창규의 호는 수산遂山, 낭간琅玕, 화화도인火畵道人이고 자는 성민聖玟, 본관은 함양이다. 1783년 전북 남원에서 살았으며 종9품 참봉직을 지냈다는 것 외에 자세한 행적이 전하지는 않지만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오세창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澂』,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그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소당 김석준金奭準(1831~1915)는 '박창규를 회상하며 懷朴琅玕' 라는 시에서 박창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拭拂忘筆墨 煉金繪形眞
纖密工何極 款識益尖新
木佛能渡火 始見悟道人
필묵筆墨을 져버리고 쇠를 달구어 참된 형태를 그려내네.
섬세한 솜씨 어찌 그리 지극한가, 관지款識는 더욱 묘하고 새롭구나.
목불木佛이 불을 건너오니, 도道 깨친 이를 비로서 보겠구나.
「홍약루속회이시록紅藥樓續懷人詩錄」에 수록

기록을 통해 박창규가 19세기 당시 조선 제일의 낙죽, 낙화가 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 일은 가업으로 이어져 그의 손자인 초산 박병수蕉山 朴秉洙(1858-?)가 낙화를 계승하였고 그의 종제와 후손을 중심으로 현재까지도 150년 동안 낙화 전통과 기법을 전승시켜 왔다.
본 출품작은 꽃과 나무, 바위에 앉은 새를 그린 화조 6폭으로 인두의 면을 사용하여 지져 표현한 농담의 변화감이 수묵화에 버금가게 다채로운 것이 특징이다. 낙화 기법과 수묵을 함께 구사한 것으로 보여지며 화필의 기량이나 화격 면에서 다른 일반 회화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 이선형, “朴昌珪(1783)의 烙畵 ‘화조도’”, 『미술사연구』 3, 미술사연구회, 1989